안녕하세요 박초연입니다. 오늘은 변화의 시발점. 회개을 해야 하는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그전에 무의식에 대해 조금 알아보겠습니다. 무의식이란 자각이 없는 상태.  즉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저절로 행동하는 현상을 이야기합니다.  무의식의 세력이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체계화하고 강조한 사람은 프로이트인데요. 그래서 그런걸까요?  사람들은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신학적이기보다는 정신 치료학적 개념으로 간주해왔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분명히 의식하는 바만 행하면 된다고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빙산의 비유를 아시나요?  수면 윗부분에서는 의식 세계의 행동과 신념과 감정을 이야기라고 수면 아랫부분에서는 자신이 선택했으면서도 분명히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이미지와 신념을 이야기하는데요.  대부분 신학교의 학생들은 성경을 해석하고 진리를 선포하며 가르치는 일, 꾸준히 하나님 뜻을 좇아 살도록 권면하는 일, 감정을 초월하여 순종 가운데 인내하고 격려하는 일 등 수면 윗부분만 배웁니다.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만일 우리가 사람들을 도울 때 수면 아랫부분을 다루어 주지 못한다면 수면 윗부분에 대한 일은 외형의 변화밖에 가져오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일의 커다란 비극은 자기 교회의 여러가지 기분에 대한 외향적 동조만이 중요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런 공동체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깊은 사랑보다는 판단주의와 율법주의, 교만 등이 특징으로 나타나게 되죠. 우리는 인간의 심성 속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이해하며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부분을 알고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면 아래의 문제를 다룰 수 있어야 하죠. 그리스도인 중에서는 무의식이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수면 밑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로 묶어 하나님께 해결해 달라고 내려놓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현실 속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뿐입니다. 자신 안에서 볼 때 우리는 전적으로 능동적인 행위자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영혼을 위협해 오는 혼돈으로부터 자신을 벗어나게 해 주는 이미지들만 골라서 형성하며 또 하나님 없이도 만족을 약속해 주는 신념들만 골라서 간직합니다. 사람의 내면에 무의식이라는 실체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타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 속에 있는 무의식의 실체를 부인하면서까지 책임이라는 개념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의식은 존재합니다. 단지 우리가 부패한 마음을 지닌 존재로서 자신이 행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다 알고 있지 못할 뿐입니다. 또한 우리는 내가 진짜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내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바로 알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전략들에 우리는 반드시 직면해야합니다. 고통이 우리를 주님께로 데려다 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방법에 대해서는 반드시 회개하고 그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을 돕기 위하여 세가지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첫번째로 하나님의 말씀,  두번째로 하나님의 성령,  세번째로 하나님의 사람들. 이렇게 세가지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이 세가지 도구를 통해 우리의 어떤 고통 속에서 회개를 돕는 것일까요? 바로 관계의 고통입니다. 하나님만이 채워 주실 수 있는 만족을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면서 만족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의 영혼을 만족시켜 주실 분으로서 하나님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분노, 탐욕, 이기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자신의 깊은 상처에 대해서는 잘 모르며 또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는 길을 선택하기 때문에 관계의 고통은 인식되지 않은 채 그대로 존재하게 됩니다.인간은 관계적인 존재이기게 자신의 고통을 의식하지 않게 해주는 전략 즉 자기 보호적인 관계를 만듭니다.상처받지 않을 만큼에 적당한 거리와 내 기분을 좋게 해줄 사람들을 주변에 두는 것이죠. 고통이란 고통을 없애려고하는 우리의 전략들이 어리석고 효과가 없다는 것을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통을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닌 해결해야 합니다.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인 것이죠.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들어가는 일이 회개 없이는 불가능하듯, 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일에도 계속되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는 화낸 것을 사과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진정한 변화가 필요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용서, 관계 지속적인 개입이 필요합니다.

용서는 용서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을수록 용서의 가치가 더욱 커집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관계의 고통을 직면할 때만 용서가 가능한 것이죠. 또 우리는 여러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서는 자기 방어적인 후퇴와 고립이 주가 되서는 안됩니다. 악의를 품고 우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라고 하나님께서는 명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자기 방어라는 생각을 떨치고 오직 섬긴다는 마음만으로 그들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이렇게 했을 때 그 속에 숨어 있는 반항과 교만을 버릴 수 있고 비로소 우리는 사람을 용서 할 수 있으며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자신을 내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변화. 회개를 통해 주님과의 관계가 더욱 튼튼해지고 공동체 속에서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변화의 시발점 : 회개

무의식 어떤 심리학자가 무의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재빨리 어떤 가정을 세우곤 한다. 심리학자의 생각은 성경의 가르침보다 세상의 훈련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는 가정이다. 

무의식의 세력이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체계화하고 강조한 사람은 프로이트이다.그래서 사람들은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신학적이기보다 정신 치료학적 개념으로 간주해왔다.그 결과 교회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분명히 의식하는 바만 행하면 된다고 가르치게 되었다.

빙산의 비유 수면 윗부분 -  의식 세계의 행동과 신념과 감정 

수면 아랫부분 - 자신이 선택했으면서도 분명히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이미지와 신념들의 세계+  우리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개념들을 근거로 삶의 방향을 전하게 된다.

무의식은 존재한다. 단지 우리가 부패한 마음을 지닌 존재로서 자신이 행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다 알고 있지 못할 뿐이다. 또한 우리는 내가 진짜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내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바로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전략들에 우리는 반드시 직면해야한다. 고통이 우리를 주님께로 데려다 줄 수 있다. 잘못된 전략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회개하고 그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고쳐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기 노출을 돕기 위하여 세 가지 도구를 사용한다.*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성령*하나님의 사람들

무의식의 내용도대체 우리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내 안의 어떤 부분들이 무의식인 걸까요?무의식 속 중요한 요소

  • 관계의 고통(관계의 고통)

하나님만이 채워 주실 수 있는 깊은 만족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의존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 우리 각자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모두들 고통 가운데 공허함에 신음하고 연약한 속에서 떨고 있음. 사람들은 분노나 탐욕이나 이기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자신의 깊은 상처에 대해서는 잘 모름. 스스로 만족을 찾는다는 노선을 고수하기 위하여 견디기 힘든 인생의 쓰라린 실망들도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야만 한다는 것. 우리는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는 길을 선택하기 때문에, 관계의 고통은 인식되지 않은 채 그대로 존재하게 됨

  • 관계를 맺는 전략들(자기 보호적인 관계 유형)

인간은 관계적인 존재이기에 인생에 반응하는 전략들을 만들어 내되 자신의 고통을 의식하지 못하게 해주는 전략, 자신이 원하는 만족을 최소한이라도 가져다 줄 만한 전략들만 만든다.


회개 -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들어가는 일이 회개 없이는 불가능하듯, 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일에도 계속되는 회개가 필요하다. 

용서 - 우리는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해야 한다. 용서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고 있을수록 용서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용서가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용서해야 될 과오의 정도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관계의 고통을 직면할 때만 용서는 가능하다

관계 속 지속적인 개입 - 우리는 우리를 해쳤던 사람, 우리를 해칠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는 자기 방어적인 후퇴와 고립이 주가 되어서는 안된다. 악의를 품고 우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라고 하나님께서는 명하셨다.우리는 이 명령에 순종하여 자기 방어라는 생각은 모두 떨쳐 버리고 오직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그들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빙산의 비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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